'살인의 동기란 무엇일까? 그것을 생각하며 이 책을 썼다.' - 히가시노 게이고 -
일반적인 추리소설은 독자가 예상하지도 못하는 어마어마한 트릭을 벗겨내면서 '앗, 이 자가 범인이었어??' 라는 놀라운 반전을 이야기함으로써 독자들의 뇌에 아드레날린을 분비해 주는 것으로 내용 전개가 이루어진다.
그러나, 히가시노 게이고의 [악의(惡意)]는 이러한 형식을 보기 좋게 탈피한다. 독자가 책의 3분의 1 지점에도 도달하지 못했는데 범인이 밝혀져 버린다. 뭐 이렇게 김이 새 버리는 구성이라니. '진짜 범인은 따로 있는거 아냐? 마지막에 펑 하고 나타나는거 아냐?' 라는 기대아닌 기대를 하게 만드는 대단한 마력. 그렇다면 나머지 3분의 2는? 책의 등장인물인 가가형사가 살인의 동기를 말하지 않는 범인이 스스로 그 동기를 자백할 수 있도록 증거물을 수집하고 범인과 인터뷰를 하면서 이를 밝혀 내는 과정이 담겨 있다.
보통의 추리소설이라면 진범을 찾게 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재미를 느끼게 되는데, 이 책에서는 가가형사를 통해 범인의 마음속을 한 꺼풀씩 벗겨 내면서 그 속살을 보는 것에서 그 재미를 찾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.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마치 파도처럼, 이야기의 흐름은 독자의 감정과 함께 책 전체를 통틀어 위 아래로 세 번 네 번 요동친다. 살인이 일어나는 과정.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. 범인의 살인 동기가 밝혀지는 과정. 범인의 진짜 살인 동기가 밝혀지는 과정. 이 모든 과정들은 범인의 동기와 그 동기가 생겨날 만큼 품게 된 악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.
추리소설을 읽을 때는 엄청난 트릭과 반전에 놀라고, 그 뒤로 몇 년이고 책장에 묵혀 두었다가 다시 꺼내 읽으면 책을 처음 본 것 같아 당황스럽게 되고 만다. (적어도 나는) 그런데 이 책은 예의 그 특이한 전개와 결말, 그리고 제목 때문에라도 10년은 묶여 두어야만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.
여름 휴가철, 가볍게 들고 가서 읽을 만한 추리소설. 그러나 내용의 무게만은 결코 가볍지 않다. (8/10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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