강동구/History

천호동 교민문고 폐업에 부쳐

2020 지구의 원더키디 2009. 12. 7. 01:03
안타깝기 그지 없다.

 오늘 우연히 천호역에서 내려, 무라카미 하루키의 "댄스댄스댄스" (하)권을 사기 위해서 교민문고 정문에 가보니 '폐업' 이라는 글자가 A4사이즈의 종이에 붙여져 있었다. 집으로 들어와서, 인터넷에서 몇 가지 정보를 찾아보았다. 교민문고는 88년도에 오픈하였고, 폐업한 이유는 출판사로 확장을 하는 중에 어음을 막지 못 했다는 것이다. 천호동에서 가장 유서깊은 서점이 사라져 버렸다.
(교민문고는 3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. 지하층은 인문-교양-과학-소설 등 일반적인 서적 / 지상 1층에는 잡지나 실용서, 어린이 책 등 / 지상2층은 컴퓨터용품-사무용품 등을 취급하고 있었다)



내 기억의 교민문고는 국민학교 시절 부터 이다. 보통 그 당시에는 동네 앞 이면도로에서 쉽게 동네 서점을 찾아 볼 수 있었기에, 웬만하면 그런 곳에서 책을 샀다. 물론 아빠나 엄마를 졸라서 책을 사야 했지만,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고 활동 반경이 자연스레 넓어지게 되면서 천호동의 교민문고까지 닿았다. 어린 마음에도 자그마한 동네서점인 '경아서점' 과는 큰 차이점을 느꼈다. 그 당시의 동네 서점은 책을 '마음놓고' 고르거나 볼 수 없었다. 이제 보니, 그 시절 동네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살 때 빨리 골라야 하는 느낌과 닮았다. 교민문고는 마음껏 보고 싶은 책을 눈치 보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. 규모가 다르다 보니 접할 수 있는 서적의 분야도 몇 배나 늘어났다. 어린이들 소설에서 인문-교양-역사쪽으로 범위를 넓히게 된 계기였다.

중학교나 고등학교 때도 교민문고행은 계속되었다. 그때만 해도 광화문 교보문고의 존재를 잘 몰랐기 때문에,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서점은 언제나 교민문고였다. 하릴없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도, 주체할 수 없는 서적에 대한 소유욕 때문에라도, 지속적으로 나의 발걸음은 이어졌다. 그 시절의 나에게 있어서 교민문고는 천호동 나들이의 시작이자 종점의 의미를 지녔다.

대학교에 입학하고, 활동반경이 서울 전체로 넓어지고 난 후에는, 내 책상의 책꽃이에는 교보문고의 책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. 교민문고에서 산 책들로 인하여 '경아서점'의 책 들이 조금씩 밀려나서 폐품이 되었던 것 처럼, 자연스레 교보문고의 책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.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하와 1층, 2층으로 이루어진 교민문고는 점점 축소되었다. 2층이 없어지고 지하와 1층으로 축소되더니, 최근에는 1층을 없애고 지하로만 축소되어 버렸다. 인터넷 서점과 대형서점에 밀려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동네서점, 지역서점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던 것 이다. 현재의 대형서점 증가 현상은 어쩌면 너무도 대형마트의 증가와 똑같이 일치한다. 식료품점이 맥도날드 체인점처럼 대형화-체인화 된 것처럼, 서점도 똑같은 전철을 밝고 있는 것이다.

개인적으로는, 입 밖으로 하얀 입김을 불어내며 꽁꽁 언 손을 움켜지고 그 당시의 인생 전부라고 생각했던 대학교의 입학 원서를 사려 1시간 동안 줄을 선 기억을 추억할 장소가 없어졌다는게 허전하다. 강동구에서 문화소비를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없어졌다는 사실도 많이 아쉽다. 한때, 교보문고가 천호동 사거리에서 오픈하기를 소망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진다.